이상하리만큼 푸근하던 날씨가 언제 다시 추워질까 했더니 다시 꽁꽁 얼어붙은 바람이 마구 분다. 겨울이 겨울답게 안 추워서 왠지 모르게 초조하기까지 하던 참이었는데

하지만, 아무리 갑작스런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지금 이 계절이 머지않아 남은 겨울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함께 든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소설가 이신조책의 연인을 읽다가 알게 되어 읽은 소설이다. 이미 인터넷 서점에서는 오랫동안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는 책인데 추운 날씨에 읽어보면 더욱 제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북유럽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편의 추리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을 느낄 수 있는 책,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다.
페터회라는 작가의 이 작품은 줄거리로만 보면 주인공 스밀라가 친하게 지내던 이누이트족 소년의 죽음을 보고 그 배후를 파헤쳐가는 내용인데 이 줄거리 자체만으로는 이 소설의 매력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문장의 표현 하나하나가 정말 예술이다. 글들을 그냥 넘기기 아까워 메모라도 하면서 읽어야겠다 싶을 정도다. 그러한 문학적 표현 들이 넘쳐나는 보석 같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뭐랄까 하드코어 액션물의 영역을 넘나들기도 하고 하여간 유럽의 잘 짜진 미니 시리즈를 하나 보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남자 작가가 여성의 입장으로 기술해 나가고 있는 부분, 다분히 수학적이고 공업적, 과학적 접근이 많은 점도 인상적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강한 인상을 받은 부분은 따로 있다.
주인공 스밀라는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 어머니에게서 자라며 극지방과 그 속에서의 지식, 삶의 지혜가 축적된 아주 매력적인 여자다. 이 글에는 이누이트가 본 비 이누이트인 즉, 평범한 북유럽 사람들의 눈과 추위에대한 어설프고 엉성한 모습에 대한 묘사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스밀라는 통제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규칙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근본적인 반감이다. 내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익숙하고 어쩌면 평안함까지 느끼는 것들 신분증, 안전검사, 신고, 등록..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것을 스밀라는 거부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다.

굳이 국민윤리나 도덕이라는 과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사회에서 나아서 자라면서 그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맞춰져 자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나도 확실하게 길들여진 탓에 사회가 요구하는 규칙에서 스스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며 사회인의 모습이 이미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있지 않은가?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이 사회가 만들어낸 소위 바람직한 인성이 체화된 불쌍한 소시민적 자아를 끌어 안고 살고 있는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나 자신은 어떤 규칙, 사회에 잘 부합하는 규율을 내면화하고 거기에 복종함으로써 안도감을 느끼고 살아가는데 익숙해 있다는 것 말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당연한 듯한 것들에 대한 스밀라의 근원적 거부감이 너무도 신선하게 와 닿는다.

 

이 소설 속의 너무도 멋진 문장 몇 개를 옮겨 본다.

 

나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언제나 등을 돌리고 있는 동안 눈이 내리기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인생은 우리가 한 번도 해결하지 못했던, 쓰디쓰고 본의 아니게 우스꽝스러우며 반복적인 갈등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면, 기다리면서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다림은 파괴적으로 변한다.”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최악의 것은 분노가 아니다. 최악의 것은 분노 뒤에 있는 욕망이다.”

 

자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맞는 일이 생기지 마치 우연처럼 보이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야.”

 

어떤 이는 이것저것 섞여 정체성이 모호한 책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모처럼 소설을 읽으며 빠져드는 특유의 스토리 몰입으로 북극의 언저리를 헤매는 겨울 밤을 만끽할 수 있었고 작가의 멋진 언어의 유희로부터 읽는 맛이 주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느끼는 소설의 묘미 중 하나는 읽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야말로 각자의 보물을 따로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Dean

책에 대한 책은 책 읽기에 대해 새로운 영역과 방법 등을 접할 수 있어 나의 영감을 자극하여 독서열을 불 지피는 역할을 하고 있어 즐겨 찾는 테마이다. 늘 꾸준히 인기를 끌며 출간되는 주제인 걸보면 이는 나만 느끼는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은 “
침대와 책을 쓴 정혜윤(CBS의 PD이기도 하다)이 또 하나의 책 시리즈 책을 펴내고 베스트 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난 이 책을 오로지 표지 사진보고 샀다. 한가득 책이 꽂힌 서재 앞에서 물끄러미 책들을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에서 책과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나 편안하게 느껴진다.

저자가 얘기를 풀어나가는 다소 현학적인 분위기와 책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오히려 많은 책을 접했다고 자랑하는 듯한 묘한 느낌의 차이가 마음에 썩 들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높이 꼽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많은 영감을 이끌 어 낼 것 같은 자극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비록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 없을 지라도 말이다. 이 책은 구성상 유명인사들중 소위, 작가가 엄선한 열독가들을 하나씩 돌아가며 인터뷰하면서 여러 분야의 주제를 짚어가고 있다. 즉, 다양한 영역에 걸쳐 책을 진하게 읽은 결과가 만들어낸 밀도있는 내용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는 그 무엇들 중의 하나가 독자의 경험과 고민과 잠재의식 속의 어떤 것이든 건드리기 쉽기 때문이라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최고의 책은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하필 이 부분을 읽는 중 다자이오사무의 만년을 사서 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섹션을 읽었는데, 온통 한 문장으로만 된 서로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내가 앞의 글을 읽고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면 다자이오사무의 책의 시작 부분에서 제 맛을 못 느끼고 좌절했을 것 같다.

 

이진경씨의 섹션에서 푸코의 유명한 책 광기의 역사를 소개하며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 바보 배가 나온다. 바보가 정말 바보같이 나오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왜 이리 가슴이 찡한지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멍하니 벌린 입과 그 표정이 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다.

 

신경숙씨의 섹션에서 그가 잘 읊는 서정주의 시,’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가 나오는데, 시의 내용이 잔잔히 와 닿아 두고두고 남는다.

 

그 애가 샘에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머리 위에 이고 오는 것을 나는 사잇길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지요. … 물방울이 그 애의 이마에 들어 그 애 눈썹을 적시고 있을 때는 그 애는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지만, …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조심해 걸어와서 내 앞을 지날 때는 그 애는 내게 눈을 보내 나와 눈을 맞추고 빙그레 소리 없이 웃었습니다. 아마 그 애는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을 수 있을 때만 나하고 눈을 맞추기로 작정했던 것이겠지요.’

 

나는 어떨 때 엎드려 꼼짝도 안하고 있을 까? 물이 자꾸만 엎질러질 때 그런 것 같다. 한 방울도 안 흘린다면 자랑스레 쳐다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마지막 부분 박노자편에서 John William Waterhouse 1891년에 그린 율리시즈와 싸이렌이라는 그림이 나온다. 오디세우스가 무수한 난파선과 암초사이에서 싸이렌(우리가 아는 싸이렌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온말이리라)이라는 요괴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결박한 채 항해하는 장면은 영화 율리시즈커크더글라스가 어슴프레한 바다를 헤쳐 나가며 괴로워하는 장면으로 늘 머릿속에 자리 잡혀 있었다. 그런데 워터하우스의 이 그림을 보면 어슴프레, 희미함 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이 색감과 현장감 넘치는 그림은 너무도 실제같아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피의 취재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밀랍으로 귀를 틀어막고 노를 젖는 이들의 모습까지 눈에 확 띄는 실감은 컴컴한 바다에서 고개를 가로졌던 커크더글라스 보다 분명 한 수 위였다.

책에 대한 열정, 책이 나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타인의 경험을 통해 자극 받고 싶은 분에게 우선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한꺼번에 읽어 치워야 한다는 강박도 느낄 것 없이 그저, 천천히 하나하나 넘겨가다 그 속에 소개된 어느 한 권에 꽂힐 수 있는 즐거움도 덤으로 준다.

-D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