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12/19 14:46
부산에 출장을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공항 대기시간이 길어져 그 틈을 타서 순식간에 읽어 치웠다. 이 책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인물들에 대한 비범하지만 알고보면 평범한 이야기들.. 재미있었다. "김수정 휴먼에세이 -사람을 빌려서 책을 읽는다"는 부제가 붙어있는 책이다. 서점에서 처음 접하고, 사람을 빌린다는 은유적 표현이겠지했다. 다양한 사람들에대한 수필을 썼나보다 하는 생각으로 집어들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진짜로 사람을 책을 빌리는 것처럼 돌아가며 인터뷰하는 행사를 체험한 얘기였다. 참 신선한 발상이고 재미있는 개념이다싶다. 그게 잘 되려나? 하는 의심어린 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평소 대중 매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접할 수 없는, 나와 너무도 다른 타인의 삶의 궤적과 모습을 직접 인터뷰해서 들여다 본다는 것.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어느정도 문화적으로 성숙되고 신뢰할만한 사회에서 가능한 행사가 아닐까 싶다. 우울증에 대한 얘기가 여러차레 나오는데, 문득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체에 대한 무수히 많은 병과 상처들을 치료하듯 정신도 끊임없이 병과 상처가 생기는데 그것이 눈에 찢어진 상처나 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과나 내과를 가듯 정신과를 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위 민간요법이나 자가치료에만 주로 의존하는 낙후함을 유독 정신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영국같은 선진국은 정신과 치료가 유난히 일상화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지도 모른다. 정신과는 마치 미친사람, 뭔가 감추어야할 끔찍한 병이 불가피한 상황에만 발길을 두는 곳으로 생각해온 내 시각이 균형감이 없다는 생각... 내겐 하나의 깨달음이다. 정말 아플 때, 병원에 가야한다. 정신이건 신체이건...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저자가 정신분열증을 단지 정신적 요인이 주도적 영향을 주는 병으로 생각하는 인상을 받은 것. 내가 아는 바로는 뇌분비 이상의 요인이 더 주된 원인이다. 접근이 치우친 것 같다. 후미의 트랜스젠더 부분에서 그 당사자가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나오며 극심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행복에 겨워 노래를 불렀다는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문득, 평생 성형외과적 장애를 안고 살던 사람이 수술을 하게되어 인생의 환희를 되찾는 장면을 TV에서 보았던 게 이것과 일맥상통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전환을 원하는 이는 흉칙한 혹이 달린 몸을 안고 사는 듯 고통을 느끼고 살았던게 아닐까? 저자가 맨 마지막 부분에 돈을 거부하고 1년을 살기로한 사람이 가장 인상적이라며 Epilog로 지목한 것이 있는데 목적과 그 본질은 훌륭하지만 인터뷰 내용은 많이 아쉽다. 저자의 얘기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얼마전 읽었던 "조화로운 삶"의 니어링 부부 얘기가 훨씬 와 닿는다. 물론 1년과 평생의 차이가 크겠지만... 어쨌든 이런 Living Library 참 괜찮은 것 같다. 한마디로 타인에 대한 편견을 되돌아 보게 해주는 딱 좋은 처방법이다. 우리나라는 안하려나? 드라마나 다큐같은 데서 보는 타인의 삶이 많은 간접 경험을 제공하고 있지만,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얘기나누는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이런 경험은 또다른 차원의 시야를 제공할 것이다. 책 중에 기억나는 멋진말. " 삶이란, 당신이 다른 계획으로 바쁠 때, 당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존레논-"
일상의 발견 2009/10/25 11:48
출퇴근시 차를 이용해오다가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새삼스레 작은 변화들을 여기저기서 느낀다. 당초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지만 오가는 무수한 무표정한 얼굴들을 다른 자동차들 뒤꽁무니 대신 쳐다보게 된 것이며, 카드형 교통카드를 매번 가방에서 꺼내쓰는 것이 휴대폰 고리형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며... 아침 저녁으로 가로수의 낙엽을 밟으며 계절의 변화를 더욱 자주 쉽게 접하게 된 것 등등
얼마전 몸이 약간 아파 잠시 앓았었는데 그러고나서 몇 일간 나도 모르게 걸음이 많이 느려진 것을 느꼈다. 기운이 좀 없었나본데 정말 나도 모르는 새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지나며 앞서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갑자기 비디오카메라가 느리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처럼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이었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순간 나는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 같았다.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워크샵에 참석했다가 가정의학과 의사 한 분이 강연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TV 아침프로 등에서 각광을 받는 유명세를 타는 분으로 기억한다. 그 분의 얘기의 골자만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일상 생활 속에 실천 가능한 운동법, 건강한 습관 같은 것이었다. 유익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열심히 들은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 중 아주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운동법 중 하나가 걷는 방법을 바꾸는 것인데, 아주 짧은 거리 사무실에서 화장실을 간다던가 주차장에 차를 향해 걸어간다든지 할 때 어깨를 펴고 빠른 속도로 씩씩하게 걸으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아주 좋은 습관이라는 것인데, 별도로 더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싶어 귀가 번쩍 뜨였던 기억이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고 나서 어느 순간엔가 그것이 역으로 강박관념처럼 작용하는 것을 느낀 것이다. 왜 나는 이 짧은 거리를 걷는 것조차 이런 식으로 하며 지내야 할까? 같은 일도 뒤집으면 묘하게 상황이 바뀌는 법이다. 일석이조는 가끔 강박이 될 수도 있다.
도산공원 정문 앞에 '느리게 걷기'라는 이름의 카페가 떠오른다. 지금은 폴로 플래그십 스토어로 바뀐 자리인데 그 카페는 근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다. 또한, 느림과 게으름이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 조금 전 어쩌면 그런 흐름이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때에 나왔던 책도 그런 제목으로 있었던 것 같다. 내 책꽂이 구석 어딘가에 꽂혀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여행기 속 모든 걸 떨치고 훌쩍 떠나 낮선 이국의 거리를 한가로이 거닐며 사색에 빠지는 낭만을 좇아 서점의 여행기 코너를 맴도는 수많은 사람들도 떠오른다.
호젓한 거리를 느릿느릿 걷는 것은 내겐 그런 이미지이다. 느림의 철학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러한 조류를 보며 막연하게만 느꼈다. 좋은 말인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특별한 때가 아니면 바쁘게 걸으며 살수 밖에 없는걸... 이것은 물론 빨리빨리에 대한 피로감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 더 빨리를 외치며 어딘가로 달려가지만 결국 쳇바퀴를 도는 우리 삶에 대한 반감 정도 였다. 좋지 하지만 내가 이것을 어떻게 내것으로 만들어 볼지는 글쎄. 일요일 아침에나 어울리는 말이지. 라는 생각 정도였다.
느림이 주는 여유와 풍요로움은 과연 그렇게 특별한 곳, 특별한 순간에만 있는 것일까?
느리게 걷는 것, 느리게 사는 것. 스스로를 돌아보건데 무슨 생각에 골똘히 빠져있을 때나 무슨 충격적인 내용을 접해 깊히 몰입하거나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평상시 스스로 느리게 걸어 본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자발적으로 걸음을 늦춰보는 것. 이것은 우리의 선택권임에도 우리가 쥐어보지 못한 티켓같은 것은 아닐까?
사실 아무데고 아무 때나 걸음 속도를 늦춰보면 된다. 겪어보면 생각보다 많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훨씬 많이 보이고 훨씬 편해진다. 풍요로움까지는 아니더라도 훨씬 여유롭고 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좋은 것은 짧게 지나가버리는 속성이 있다. 느리게 걷는 것은 그나마 그 속성도 늦춰주는 여운같은 것이 덤으로 있는 것같아 더욱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같다. 물론 언제나 느리게 다닐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당연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걸음을 늦춰볼 수 있다는 것. 언제고 나를 느림의 세계로 안내해서 한 호흡 늦춰 여유를 주는 처방을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아닐까.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10/14 21:14
2007년 가을 여러가지 문제로 마음이 어지러웠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가장 힘들게 느껴진 부분은 사람과의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였었는데, 그 때 달라이라마에 대한 스테디 셀러 책 중의 하나인 '용서'를 샀다. 진정한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용서를 하는 본질을 알아야 하는 것인데. 책을 읽으며 그 본질에 접근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당시에는 책을 읽을 마음의 상태가 되지 못해 읽지는 않았었다. 이 후 어느 날 불현듯 다시 집어 들고 읽게 되었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지은 '오래된 미래'와 같은 이름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달라이라마.
티벳의 전통 속에 어린 시절 다소 모호한 이유에 의해 선출되는 인상을 받고 있어 그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위치에 올라간
사람이라는 인상이 있어 나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그가 위대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기도 했다. 하긴 세습되는 왕의 위치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지도자로서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지 않은가? 그저 중국의 탄압 속에
상대적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아닐까?하는 시각으로 무수한 매스컴의 내용들을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의 고뇌와 사상을 얼핏 느낄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처음 그냥 읽었을 때 그저 전형적인 격언같이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앞설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용서라는 개념의 차원을 분명하게 넓히고 깨닫게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용서'라는 말을 떠올리면 무조건 상대방만을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은 용서에있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그 미움, 원망 이라는 내 안의 실체를 놓아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용서는 결국 상대와 나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용서는 상대에 대한 내 안의 문제이다. 철저히 내 안의 문제인 것이다.따라서 용서야말로 자신에게도 최상의 길이라는 것으로 귀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것이 마음을 차분히 정리해 볼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의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외에 틱낫한 스님의 말도 인용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당신은 이 종이 한 장 속에 구름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나무가 없으면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다."나는 종이에서 구름을 볼 수 있는 사람인지 자문해보았다. 그런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가? 경계를 허물고 세상을 상호의존적 시각에서 바라 볼 줄 아는 것. 우리 모두는 어차피 모두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피아의 경계선이 약화되고 세상에 대한 자비심이 생겨 나는 것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국 사람에 대한 언급이 두차례 나오는데 작가 '빅터 챈'은 왠지 한국에 대해 냉소적 느낌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본의 얘기는 없어도 한국의 무용수나 도올 김용옥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싶어 반갑기는 했는데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 글쎄, 왜 그런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김용옥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는 달라이라마를 만나 대담을 나누고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이 '용서'의 내용 중에 그 대화를 위해 달라이라마를 찾았던 상황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김용옥은 영적인 대화를 위해 찾아온 것 같지가 않다. 교리와 지식을 늘리고 논하기 위해 만난 것 같다. 김용옥은 스스로가 너무나 똑똑해서 못견디는 사람이 아니던가... 베이징 올림픽 무렵 티벳 문제에 대해 다소 온화한 척 했던 중국이 올림픽이 끝나기 무섭게 강성으로 돌아섰고 비폭력 평화적 해결을 주창하는 달라이라마가 두손두발 다 들다시피하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근래의 소식을 접하고 있다. 중국의 무조건적인 팽창정책과 탄압 속에 달라이라마는 어디까지 용서하며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10/10 20:42
'최고의 책은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멋진 말이다. 내 독서의 지평을 한단계 더 나아가게 해주는 말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에서 본 글이다. 하필 이 부분을 읽다가 서점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을 사들고 그 첫 섹션 '잎'이라는 부분을 읽게 된 것이 참으로 절묘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잎'은 온통 한 문장으로 된 이야기들로 불연속적으로 나열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했으면 난 이 부분을 뛰어넘지 못하고 '만년'을 무슨 초현실적인 해체주의자의 책인양 치부하고 던져버렸을 것이다.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10/05 22:42
근래에 나오는 책들중 아주 많은 경우 허리에 띠지를 두르고 있다. 책을 읽는 중에 자꾸 손에 거슬려 아예 옆에 빼 놓고 읽는 경우도 많은데, 이 띠지는 책을 선택하는 고객의 관심을 끌 목적으로 붙어 있다보니 자극적인 카피가 쓰여있는 편이다. 그렇다보니 본질적으로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원색적인 표현에 책 디자인의 일부로 보기는 어려운 경우도 많다. 물론 어떤 경우는 제법 중요한 정보를 따로 제공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도 말했듯이 띠지의 문구로 인해 책을 구매하게 되는 일도 많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 띠지의 내용이 기억나는 책 두가지,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의 띠지를 보면, '한 권이 당신의 두 손의 때로 까맣게 빛날 때까지 거듭거듭 애독될 것을 생각하면 아아, 나는 행복하다.' 라는 저자의 다소 오만한 듯한 글이 나와있다. 오만하기 그지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홍보 문구로써는 이만한 표현이 있을까? 나는 이 띠지의 글이 눈에 띄어 사고 말았다. 참으로 괴이할 정도의 자기몰입인데 작가라면 이 정도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야 워낙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으로 소문난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나 자신을 보면 이 띠지가 도서 판매의 증대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앞선다. '코맥 맥카시'의 소설 '로드' '감히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 정말 감히라는 말이 앞에 나올 법한 표현이다. 종교계 입장에서 보면 황당할 말이겠다싶다. 요즘 이 정도의 도발적인 띠지 글이 아니면 안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내 사견이지만 '로드'는 그 정도의 도발적 홍보 문구를 쓰지 않아도 될만큼 충분히 훌륭한 소설이다. 그래서 이러한 띠지의 오버가 좀 아쉽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 이토록 절박한 홍보 문구를 써야할 정도로 자체의 상품성이 없는 소설인가 싶어 사고 싶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후 이 책의 진가를 알게 되어 사기는 했지만 이 띠지의 첫 인상이 그랬다면 그건 분명 역효과 아닐까? 책의 띠지는 말초신경 자극과 역효과라는 줄다리기의 접점을 잘 잡아야 하는데다, 책이 지향하고자 하는 디자인의 틀을 해치지 말아야 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숙제일 거라는 생각이다.
무제 2009/09/30 23:35
9월의 마지막날 모처럼 내가 즐겨 찾다가 한동안 뜸했던 블로그 몇 군데를 돌아다니고 느낀 점이다. 블로그의 포스팅이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하는 경우, 그 조짐?을 느낄 수 있는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다. 다름 아닌 포스팅하는 글의 양이 많아지고 과도한 정성이 들어가기 시작한다고 느껴지는 시점이다. 그러면 아주 작정하고 쓰여지는 전문 블로그가 아닌 이상 조짐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블로그 글을 올리다 보면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멋진 문장의 글을 올리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글을 써가면서 문장력도 알게 모르게 늘기 시작하니 더더욱 그렇다. 오랫동안 블로그를 운영해서 관록이 붙은 분들은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체력, 즉 뒷감당 가능한 선에서 글을 올리고 운영하는 것이다. 블로그의 어떤 전형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글이 너무 많은 블로그 역시 환영 받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그렇게 잘 알지만 나도 내 글을 그렇게 써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내 블로그는 아무리봐도 시간이 흘러도 소위 초짜 냄새가 많이난다. 사실 내가 블로그에 쏟는 시간과 열정을 생각할 때 그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다른 일들도 다 그렇지만, 내가 알고 타인의 블로그를 보면서 논하는 것과 내 자신이 어떻게 하는 것이 다르고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블로그 포스팅들이 통상 너무 길어서 문제라는 것과 과도한 정성과 중단을 반복하는 초짜 블로거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해 스스로 불만 스럽다는 것을 나는 또 이렇게 길게 쓰고 있다. ㅜㅜ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09/26 23:26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자신의 체험을 박력있는 문체로 나타내는 데 특별한 소질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책의 재료가 되는 그 내용, 즉 그녀의 경험 자체가 더 없이 강렬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월간지 GQ의 기자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다소 현란하고 과장되었다고 느낄 정도의 말솜씨가 그러한 배경의 훈련 탓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선입견 일까... 처음 읽기 시작했다가 서두가 너무 여성 편향적인 느낌이라 흥미를 잃어 중단했었다. 하지만 문득 편하게 다시 읽혀질 것 같아 집어 들고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혼의 고통을 안고 길을 나선 저자는 이태리에서 먹기, 인도에서 기도하기, 발리에서 사랑하기를 차례로 경험한다. 위의 책표지 디자인이 함축적으로 그것으로 나타내고 있다.이 때문에 이례적으로 원전의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 같다. 디자인이 참 잘된 책표지다. 살면서 문득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순간에 와 있는 걸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저자의 고통스런 이혼은 그런 순간에 시작된 것이다. 이혼의 소송과 극한의 대립을 거치면서 환멸을 느낀 저자는 마음이 망가질만큼 망가지고 떠남을 결심하게 된 것인데 여기까지는 그리 크게 와닿는 느낌은 사실 없다. 더구나 첫 코스인 이태리에서의 나날은 그런 고통에대한 치유의 시간으로서 소소한 일상 들의 묘사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아마도 이쯤에서 내가 읽기를 멈추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매우매우 여성 취향 중심적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기도하기 부터였다고 봐야한다. 그것은 아주 작은 깨달음의 시간... 이었지만 더 없이 소중한 느낌이었다. 저자가 고통의 그늘에서 벗어나 점점 건강한 영혼을 찾아가는 여정으로서 시작은 신변잡기적인 에세이같지만 마무리는 구도자의 책같은 느낌이 들어 비판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걸 다 섞어 놓은 듯한 상업적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충분한 성찰 속에 내용이 깊이가 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아주 좋은 말들을 따분하지 않은 시원시원한 문체와 쉬운말로 와닿게 잘 써놓고 있다. 가슴깊은 경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들이다. 정말 잘 쓴 글이라는 말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다.
"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 나는 그게 그의 유일한 옷이라는 걸 깨달았다. ... 왜 이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그토록 감동하는 걸까? 너무도 광채가 나서 마치 은하수로의 긴 휴가를 마치고 방금 돌아온 듯한 그 얼굴"
저자가 요가 수련을 하려고 방문한 인도의 수련장에서 마주친 소년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문득, 욕심없음,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삶을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탐욕이 가져다준 번민, 끊임없는 가식... 문득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이외에 내가 밑줄 긋고 두고두고 다시 보고 싶은 본문 내용들이다. "신앙심이 독실한 사람들은 어떤 보답을 받게되리라는 보장도 없이도 의식을 수행한다. 신앙은 확신없는 근면이다. 우리들 중 누구도 그 결말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신념이란 어둠을 향해 정면으로, 전속력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신념이 이성의 영역이라면 그건 신념의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신념이란 보거나, 증명하거나, 만질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다.""운명은 신의 은총과 의식적인 자기 노력 사이의 놀음이다. 운명의 절반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절반은 완전히 우리의 손아귀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이 결과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인간은 단순한 신의 꼭두각시도 자기 운명의 완벽한 지휘관도 아니다. ... 우리는 빠른 속도로 나란히 달리는 두 말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서커스 곡예사처럼 정신없이 살아간다. ... 운명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차 있지만, 반면 내 사법권 안에 속하는 것들도 있다. 나는 분명 복권을 살 수도 있고, 시간을 어떻게 쓸지, 누구와 만날지, 무엇을 먹고, 읽고, 공부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인생의 불행한 환경을 저주로 받아들일 것인지, 기회로 받아 들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말할 때 쓰는 단어와 목소리와 톤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생각을 선택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내 생각을 바라보고 검열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난 더 이상 건강하지 못한 생각들의 항구가 되지 않을거야' ...더 이상 혹독하고 독설적인 생각은 이 항구에 들어올 수 없다. 여기는 평화로운 항구이며 이제는 오로지 평온함만이 피어나는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유일한 통로다.""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복을 일종의 행운, 운좋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행복은 그런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행복은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행복을 얻기 위해 싸우고 노력하고 주장하고 때로는 행복을 찾아 세상을 여행하기도 해야한다.자기 행복의 발현을 위해 무자비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 행복의 상태에 도달했으면 그것을 유지하는 걸 게을리해서는 안된다.""슬픔과 고난은 불행한 사람에 의해 생겨난다. 내 인생의 불행한 사건들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과 괴로움, 불편함을 가져다 준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자기 방어적이고 나만 이롭고자 함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자비로운 선물이기도 하다. 우리의 불행을 깨끗이 털어내는 것은 곧 우리의 임무를 마치는 것""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정의하는 말을 듣고, 이 말들은 거기에 수반되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데, 그 감정은 끈에 묶인 개처럼 우리 주위를 맴돈다.""떡갈나무를 탄생시킨 것은 동시에 두가지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 첫째는 나무의 시발점이 되어준 도토리다. ... 다른 힘은 어서 빨리 세상에 존재하고 싶은 마음에 도토리를 도와주는 미래의 나무... 떡갈 나무가 탄생한 도토리를 창조한 것은 다름아닌 떡갈나무 자신. ...더 젊고 더 혼란스럽고, 더 힘들었던 그 기간동안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를 끌어 당겨 주었던 건 이 행복하고 균형잡힌 나 ... 어서와 여기서 나를 만나자 라고 말해준 더 나이든 나는 미래의 떡갈나무.4년 전 한밤중 욕실 바닥에서 흐느끼던 젊은 ... 나의 주위를 맴돌던 상냥하게 속삭였던 건 지금의 완전하게 발현된 나"정말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내 마음이 훨씬 밝아질 수 있음을 느꼈다. 밝은 책을 더 읽고 싶다. 마음이 밝아지는 책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한다.
일상의 발견 2009/09/23 22:01
(1년간 내 손을 타며 곁을 지킨 몰스킨 노트와 비스콘티 만년필)
딱 1년전인 것 같다. 지인으로부터 가죽 커버의 질좋은 몰스킨 노트를 A4사이즈 정도의 큼지막한 걸로 선물을 받았었다. 가뜩이나 손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데다 요즘 누구나 그렇지만 손으로 글을 잘 쓰지 않는지라 일정이나 업무회의의 간단한 메모를 작성하는 다이어리 정도라면 모를까 큼직한 이 노트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독서노트를 써보면 어떨까 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일일이 읽은 내용을 노트를 작성한다는 것이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수필집 '깊이에의 강요'에서 문학적 건망증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서 언급한 바도 있지만, 책을 덮기 무섭게 잊어버리는 것들이 많아 허망하기 그지 없기도 하다. 좋은 노트에 좋은 펜을 갖춘다면 책을 읽고 긁적이는 버릇을 만들어보고 이를 유지할 수도 있겠다하는 용감한 생각을 하고 9월30일자를 처음으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간 중간 학창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출력물 같은 것으로 스크랩을 해서 붙이기도 하고... 특히, 저자의 얼굴이나 저자가 인상깊게 언급한 대상에 대한 사진을 찾아 붙이니 더욱 좋았다. 이것은 오프라인의 은밀한 내면적 블로그라고 봐야 할 것이다. 중간 중간 몇번 멈추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쓰는 즐거움을 되찾기 시작했고, 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작성하는 매수가 넘어가면서 거의 1년이되는 올 9월말이면 한 권을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결국 9월 22일 밤이 되어 마지막 페이지를 쓰게되었다. 페이지들을 넘겨보면서 책의 감상과 인상적 부분들을 읽어보니 기억이 새롭고 그 때의 감흥이 그대로 되살아 난다. 독서를 취미를 가지는 이들에게 독서노트는 정말 값진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물론 중간에 노트와 요약에 집착하여 독서 자체가 스트레스처럼 변질 된 경험도 있다. 이것은 과한 노트열에서 기인한 부작용이며 독서라는 본질의 흥미를 저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소중한 독서의 경험을 건망증이라는 허망한 말에 날려 버리지 말고, 진정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노트는 진정으로 우리의 독서 생활에 정수를 남겨줄 수 있다. 물론 나는 또다른 질 좋은 노트를 준비해서 두번째 독서노트를 시작할 생각이다. 가급적 질이 좋아 펼칠 때마다 글을 쓸 때마다 느낌과 기분이 좋아지면 좋을 것이다. 게다가 필기구도 좋은 것을 준비해보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일상의 발견 2009/09/20 21:58
모처럼 맛집 순례를 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데 왠 냉면일까? 물론 요즘 냉면이야 계절에 거의 무관한 음식이 되버렸기도 하고 그 만큼 나는 냉면을 좋아하기도 하다. 얼마 전 때마침 회사 일로 업체 방문차 마포 근처에 갈일 있었는데 점심시간을 놓쳐 간단히 홀로 때워야 할 상황이었다. 평소같으면 사무실 근처로 복귀해서 대충 먹고 들어갈 생각을 했지만, 이 날만큼은 평양냉면 지존의 하나로 예전부터 유명한 '을밀대' 근처에 있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1시가 넘어서 점심치고는 늦은시간이라 그리 붐비지 않을거라는 기대를 했다. 을밀대는 약 10년전 쯤에 가보고 못가본 것 같다. 차량 내비게이터에 을밀대를 찍고 방향을 틀었는데, 기억을 되살려보니 당시 시장 골목 같은 곳에 식당이 있고 길이 좁아서 방향을 잘 못 잡으면 고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드디어 을밀대 앞에 도착했는데 근처 골목에 유료로라도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 해도 도무지 그럴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뙤약볕 아래 문 앞에서 서있는 서너명의 사람들... 이 시간에도 줄을 서 있네 싶고 차 댈 곳도 없고 잠시 망설였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기필고 맛을 보고 가리라. 전의를 불태우며 차로 주변을 다시 한 바퀴 돌아 구립 문화센터같은 곳을 찾아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후의 작렬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터덜터덜 걸어가니 그 새 다행스럽게도 줄이 없어져 있었다. 본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예전의 작은 식당 외에 마주보고 있는 건물 일부를 좀 더 빌려 확장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내부 시설을 보니 CCTV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터치패널을 이용한 결재 시스템도 갖추고 최첨단을 자랑한다. 별관에 해당하는 자리로 안내를 받아 앉았다. 물냉면 한 그릇을 주문하고 둘러 보니 빈대떡을 입구 옆에서 부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의 특징 중 하나가 빈대떡이다. 먹음직스러운 놈을 보니 여럿이 일행으로 왔다면 시켰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 곳은 뭐니뭐니 해도 물냉면이다. 드디어 나왔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게 아주 시원해보였다. 육수를 먼저 들이켜 본다. 흠... 아주 소박하고 깔끔한 맛이다. 기교나 꾸밈이 전혀 없는 그러면서도 입에 착 달라 붙는 맛이다. 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어본다. 면발의 찰진 상태와 면의 맛이 거의 완벽에 가깝다. 적당하게 쫄깃하면서 면의 맛도 적당히 간이 되어 감칠맛이 난다. 보통은 겨자를 넣어 먹지 않지만 왠지 이 육수는 겨자를 약간 풀어서 먹으면 최고의 맛일 것 같았다. 겨자를 약간 풀어 넣자. 정말 환상적인 맛이다. 후루룩 후루룩 뚝딱 춘향전에 이도령이 거지차림으로 게걸스럽게 먹었다던 말그대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나오면서 차를 가져온 경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근처 건물을 하나 가리키며 그곳에 세우면 주차권을 해준다고 했다. 전화를 해서 그 주차가 가능한 건물명을 미리 알고 가면 좋을 것이다. 나의 평양냉면 랭킹에서는 5위이지만 겨자를 함께한 냉면이라고 하면 이 곳이 단연코 으뜸이다.
일상의 발견 2009/09/13 15:20
책 읽는 생활을 아주 즐겁게하는 타인의 경험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독서를 즐기는 데 있어 큰 자극이 된다. 그래서 단지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서평을 읽고 책을 고르는 데 참고하는 것 이외에 독서 생활 자체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이러한 독서에 관한 책은 책을 즐기는 여러가지 기법에 대한 힌트를 주기도 하는 데,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도 그런 책의 하나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독서를 즐기는 여러가지 방법이나 습관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잠자리에서 잠들기 전에 읽는 책에 있어 특정한 주제를 항상 정해 놓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녀가 잠자리에서 항상 읽는 책의 주제는 극지방에 관한 것처럼 아주 낯설고 특별한 모험이 필요한 극단적인 장소에 대한 책이다. 그러한 장엄한 곳이 주는 일종의 '환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찌기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이러한 장엄함이 주는 극적인 효과에 대해 언급한 것이 기억난다. '앤 패디먼'은 침대 머리맡에 가까이 이와관련 된 주제의 책들을 모아 놓는 책장을 놓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늘 잠자리에서 이러한 책을 읽으면서 즐겁고 편안한 잠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정혜윤'의 '침대와 책'도 역시 잠자리에서 읽는 것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나는 어떤 주제의 책들을 잠자리에서 읽으면 좋을까? 그렇다! 책에 대한 책들이 좋겠다.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책에 대한 책들이 갖는 많은 장점 때문에 나는 이에 관한 많은 책들을 사들였고 즐겨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잠자리 머리 맡에도 책에 대한 책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읽고 있는 책이 있어 거기에 몰입되어 있을 때는 물론 그 책을 읽는다. 이외에도 특정한 장소에 대한 책을 그 장소에 가서 다시 직접 읽어 보는 것이 보통 재미가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여행기가 주로 그러할 것이다. 언제 기회가 닿으면 이 방법도 실행해 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