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용서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10/14 21:14
당시 가장 힘들게 느껴진 부분은 사람과의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였었는데, 그 때 달라이라마에 대한 스테디 셀러 책 중의 하나인 '용서'를 샀다.
진정한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용서를 하는 본질을 알아야 하는 것인데.
책을 읽으며 그 본질에 접근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당시에는 책을 읽을 마음의 상태가 되지 못해 읽지는 않았었다.
이 후 어느 날 불현듯 다시 집어 들고 읽게 되었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지은 '오래된 미래'와 같은 이름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달라이라마.
티벳의 전통 속에 어린 시절 다소 모호한 이유에 의해 선출되는 인상을 받고 있어 그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위치에 올라간 사람이라는 인상이 있어 나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그가 위대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기도 했다. 하긴 세습되는 왕의 위치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지도자로서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지 않은가? 그저 중국의 탄압 속에 상대적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아닐까?하는 시각으로 무수한 매스컴의 내용들을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의 고뇌와 사상을 얼핏 느낄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처음 그냥 읽었을 때 그저 전형적인 격언같이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앞설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용서라는 개념의 차원을 분명하게 넓히고 깨닫게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용서'라는 말을 떠올리면 무조건 상대방만을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은 용서에있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그 미움, 원망 이라는 내 안의 실체를 놓아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용서는 결국 상대와 나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용서는 상대에 대한 내 안의 문제이다. 철저히 내 안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용서야말로 자신에게도 최상의 길이라는 것으로 귀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것이 마음을 차분히 정리해 볼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의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외에 틱낫한 스님의 말도 인용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당신은 이 종이 한 장 속에 구름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나무가 없으면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다."
나는 종이에서 구름을 볼 수 있는 사람인지 자문해보았다. 그런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가?
경계를 허물고 세상을 상호의존적 시각에서 바라 볼 줄 아는 것.
우리 모두는 어차피 모두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피아의 경계선이 약화되고 세상에 대한 자비심이 생겨 나는 것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국 사람에 대한 언급이 두차례 나오는데 작가 '빅터 챈'은 왠지 한국에 대해 냉소적 느낌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본의 얘기는 없어도 한국의 무용수나 도올 김용옥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싶어 반갑기는 했는데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 글쎄, 왜 그런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김용옥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는 달라이라마를 만나 대담을 나누고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이 '용서'의 내용 중에 그 대화를 위해 달라이라마를 찾았던 상황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김용옥은 영적인 대화를 위해 찾아온 것 같지가 않다. 교리와 지식을 늘리고 논하기 위해 만난 것 같다.
김용옥은 스스로가 너무나 똑똑해서 못견디는 사람이 아니던가...
베이징 올림픽 무렵 티벳 문제에 대해 다소 온화한 척 했던
중국이 올림픽이 끝나기 무섭게 강성으로 돌아섰고 비폭력 평화적 해결을 주창하는 달라이라마가 두손두발 다 들다시피하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근래의 소식을 접하고 있다.
중국의 무조건적인 팽창정책과 탄압 속에
달라이라마는 어디까지 용서하며 받아 들일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