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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맞이 지리산 등반 (1)

일상의 발견 2008/01/25 23:52

재작년 겨울 지리산을 올라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코스를 잡고 등산을 한 적이 있다.
컴컴한 새벽 장터목 산장을 나서 세석평전 부근에서인가 이글 이글 붉게 타오르며 떠오르던 해돋이를 가슴에 새겨둔 기억이 있다. 평생 못잊을 멋진 풍경이었다.
새해를 습관처럼 그저그런 마음으로 맞이하고 뭔가 부족함에 일신하는 마음의 계기가 만들고 싶어졌다. 게다가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향수병, 온세상이 눈으로 가득한 별천지 같은 겨울 산이 모처럼 그리워지기도 했다. 겨울산은 신발부터 옷까지 성능 좋은 제품으로 잘 갖춰 입어야 안전하기 때문에 평소 산에 잘 다니지 않아 그러한 것이 없는 동료들까지 꾀어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회사의 준비된 소수, 즉 김대표와 동생 그리고 나, 삼인방이 함께 가기로 했다.

겨울 산행은 내복, 두터운 옷이나 스패츠, 아이젠 등 배낭이 무거워질 수 밖에 없고 언제나 무게와 부피를 줄이기 위해 먹는 것은 최소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나를 따라 몇 차례 다소 센? 경험을 했던 동생은 들뜬 표정을 하면서도 이 번 만큼은 먹는 건 제대로 챙겨보겠다고 벼른다.
산꼭대기 대피소에서 다른 이들이 만들어 먹는 푸짐한 요리에 한?이 맺혔다고 했다. 하긴 달걀을 너무 좋아해 계란을 판으로 사서 짊어지고 온 사람, 생전 처음보는 미니 압력솥까지 지고와서 윤기 좔좔 흐르는 밥을 해먹는 사람, 배추 한 통을 가져와 날된장에 쌈을 싸먹는 이까지 보아왔다. 정말 먹는 것에 목숨건 분들은 깊고 높은 산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결국 동생이 이번 산행에서 준비하겠다고 마음먹은 메뉴는 돼지삼겹살 두루치기였다. 정말 야심찬 계획이 아닐 수 없다. 난 3박4일 등산을 하면서도 말린 과일이나 쵸코바, 대피소에서 파는 햇반에 사발면 이상의 호사?를 누려본 적이 없었다.

주말의 여정으로 금요일 약간 앞당긴 퇴근을 하고 저녁 새마을호에 몸을 실었다. 용산역을 출발하여 영등포 역을 지날 무렵 식당칸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을 먹었다. 맥주를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기대반 걱정반의 얘기를 나누며 잠시 열차여행의 즐거움을 느꼈다. 초고속을 자랑하는 KTX에 없는 식당칸의 즐거움이 새삼스러운 시간이었다.
시설이 좀 질이 떨어지고 노후된 것이 아쉽다. 약간 더 좋았으면... 게다가 비싼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일인 다역의 두 아주머니의 노력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식당칸을 운영하던 아주머니 두 분은 잠시 후 커피메이커를 열차칸마다 들고 다니며 커피와 스낵을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잠깐 졸다보니 그 아주머니가 이번에는 천안 호두과자를 외치며 팔고 지나가고 있었다.

컴컴한 밤 열차길을 가며 창밖에는 기대하던 눈은 안오고 비가 조금씩 후려치더니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기도 했고 열차는 어느새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구례구역은 구례읍에서 떨어져 있어 우리가 내린 시각은 이미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추적추적 비만 내리고 외로운 가로등 아래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열차 도착 시간을 알고 기다린 택시 기사 아저씨가 읍내로 가냐고 묻는다. 가겠다고 답변을 하는데 동생은 열차안에서부터 푸줏간이 문을 닫아 삼겹살을 못살까봐 안달이었던 차라 슈퍼마켓부터 뛰어간다.
그 새 그 택시 아저씨는 다른 손님을 태우고 읍내로 향한다. 다시 데리러 올거라고 한마디 하면서 차를 돌리는 그 기사 아저씨를 보며 우리마저 한탕 더 뛰려는 욕심 많은 아저씨다 싶어 흘려듣고 다른 택시를 기다렸다. 다른 택시 타면되지 다시 온다는 건 뭐람? 하지만 적막한 시골길에 기다려도 기다려도 막차 지나간 열차역앞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잠시 후 그 아저씨가 돌아왔다. 여긴 시스템이 그랬구나...

역전의 시골슈퍼 이곳저곳 문 닫는 시간에 바삐 순회하여 검은 비닐 봉지에 삼겹살 한덩어리를 들고 온 동생은 김치를 살 수 가 없었다고 투덜댄다. 김치가 슈퍼에서 잘 팔리지 않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읍내 편의점가면 쉽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조심스레 했다.
택시를 타고 출발하며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는데 대뜸 동생이 여기 김치를 어디서 사야하죠? 하며 묻는다. 기사 아저씨는 특유의 전라도 억양으로 우리집이 역전인데 이번 김치맛이 아주 좋던데 집에서 싸주겠다며 차를 집으로 돌린다.
순간스러운 당황... 남의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거북함. 여러가지 감정이 아주 짧게 교차한다. 집에서 나오는 아저씨의 손에는 무려 두포기의 김치가 통째로 들어 있는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너무 많다. 고맙다는 인사를 뒤로 하고 우리 숙소에 내려 놓은 기사아저씨는 내일 아침 산으로 갈 때 예약해달라는 영업을 하며 전화번호를 건내고 차를 돌린다.
비는 조금씩 계속 내렸다. 이게 눈으로 바뀔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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