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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파리에서 달까지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08/2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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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고프닉'이라는 미국인이 파리에 살면서 프랑스의 내면 특히 파리에서의 삶을 들여다 본 책이다.
이 책이 출간되자 마자 사들였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표지에 '알랭 드 보통'이 "최근 수년간 나온 프랑스에 관한 책 중 가장 멋진 책"이라는 찬사가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작년 봄에 사서 나는 책장 위를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읽지 않고 묵혀 두게 되었는데 아마도 내가 파리 그 자체에 대해 확 달려 들 정도의 관심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추천도 매력적이고 분위기가 언제고 읽을 것 같았기에 몇번이고 내 손을 탔었고 결국 이번에 읽고야 말았다.

단순히 외지인이 어느 지역을 둘러보며 쓴 기행문과는 많이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100% 현지인처럼 동화된 것도 아니다. 타지에 수년간 머물면서 외부인의 시각이기는 해도 철저히 현지의 언어와 문화 특히 언론인으로서 사회 전반을 꿰뚫어 보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어 아주 인상적이다. 저자는 프리랜서 기자였다.

생각해보면 기행문이라는 게 이방인이라는 입장에서 화자 내면의 문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때문에, 물과 기름같은 둥둥 떠있는 공허함까지 느껴 지는 글들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이 책은 깊숙히 들어가 있는 책이었다.
게다가, 나의 머리를 신선하게 자극한 부분이 있었다.
딱딱해지기 쉬운 내 사고의 유연성을, 그 한계를 넓혀야 한다는 자각. 이는 내가 평소에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서 내세우고 싶은 지론 중의 하나이다. 일상 속에 나의 시각은 자꾸만 고착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가장 균형잡힌 시각인양 느껴지게 된다. 내 나이가 또 그럴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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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파업을 야기한 대목을 읽으면서 그랬다.
에펠탑의 엘리베이터를 조작하는 직원이 고객의 의견을 즉시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자 직원들이 들고 일어나 파업을 한다.
나에겐 이미 고객 제일주의, 돈을 지불하는 자의 요구를 당연히 최우선으로 만족시켜야 한다는 미국, 일본식 사고가 가장 중요한 척도로 자리 잡지 않았는가?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신성한 명제다. 그 누구도 반기를 들면 안되는 것이다. 예전부터 파리에서 가게를 들어가면 손님에게 불친절하고 도도한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나역시 혀를 끌끌 차며 그런 기본이 문제가 있으니 성장의 한계를 맞고 있는거 아니겠는가... 하고 냉소적으로 생각했었고.
그러나, 파리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달랐던 것 같다.
고객이나 서비스하는 이나 어차피 그 상황에서 그럴 뿐 각자 서로 존중해야 할 직업인이고 결국 공급자의 입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아주 근본적인 부분의 관점이 달랐던 게 아닐까?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말도 안돼에서 시작해서 흠... 그런면이 있구나'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했다.
나의 머릿속이 말랑말랑해지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미국인들은 어떤 것이라도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완결된 사회를 원한다..... 반면에 프랑스인들은 모두가 자기 완성을 향해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따라서, 남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혼자 있도록 두지 않는 파리 사람들.... 군중에 파묻힌 채.... 나누는 익명성은 결국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파리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았지만 진정으로 혼자이기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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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에서 어느 누구도 임의의 타인에 대해 개의치 않는 철저한 개인주의.
삭막함의 대표적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 "익명성"을 저자는 그리워하고 있다는 게 참 재미있다. 그렇다 저자는 뉴욕 출신이다. 돌이켜보건데 나 자신도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 속에서 익명성에 파묻혀 편안함을 느끼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편안함은 있다. 문득, 오래전에 읽은 스페인 마요르카 섬의 얘기 "뽀까뽀끄"가 추구하는 바와 정반대의 그것을 느꼈다.

낙천성과 즐거움이 극대화된 미국적 스포츠인 농구(쉴 틈 없이 점수가 계속 난다)와 달리 툭하면 0:0 무승부로 끝나고 아무리 경기를 잘해도 점수가 안나면 지는 축구를 과연 오락의 대상으로 적절한지 묻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축구가 우리의 현실, 우리의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는 그의 시각이 신선하다.

외국인에게 관대하게 개방된 의료시스템, 전통 있는 레스토랑을 보존하기 위한 의기투합의 모습 등이 기억에 남는 다. 짧은 기간을 낯선 땅에 살면서 이토록 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게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경험에도 불구하고 말미에 가면 저자가 애초에 파리에 가면서 세계주의를 부르짖는 보편주의자로서 땅을 밟았지만 결국 그 속에 동화되지 못하고 한계를 느끼는 우울함을 얘기하고 있기도 하다.

여하튼 잘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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