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10/25 느리게 걷는 것
  2. 2009/10/14 <서평> 용서
  3. 2009/10/10 최고의 책은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4. 2009/10/05 책의 "띠지"에대한 짧은 감상

느리게 걷는 것

일상의 발견 2009/10/25 11:48
출퇴근시 차를 이용해오다가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새삼스레 작은 변화들을 여기저기서 느낀다.
당초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지만 오가는 무수한 무표정한 얼굴들을 다른 자동차들 뒤꽁무니 대신 쳐다보게 된 것이며, 카드형 교통카드를 매번 가방에서 꺼내쓰는 것이 휴대폰 고리형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며... 아침 저녁으로 가로수의 낙엽을 밟으며 계절의 변화를 더욱 자주 쉽게 접하게 된 것 등등

얼마전 몸이 약간 아파 잠시 앓았었는데 그러고나서 몇 일간 나도 모르게 걸음이 많이 느려진 것을 느꼈다.
기운이 좀 없었나본데 정말 나도 모르는 새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지나며 앞서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갑자기 비디오카메라가 느리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처럼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이었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순간 나는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 같았다.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워크샵에 참석했다가 가정의학과 의사 한 분이 강연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TV 아침프로 등에서 각광을 받는 유명세를 타는 분으로 기억한다. 그 분의 얘기의 골자만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일상 생활 속에 실천 가능한 운동법, 건강한 습관 같은 것이었다. 유익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열심히 들은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 중 아주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운동법 중 하나가 걷는 방법을 바꾸는 것인데, 아주 짧은 거리 사무실에서 화장실을 간다던가 주차장에 차를 향해 걸어간다든지 할 때 어깨를 펴고 빠른 속도로 씩씩하게 걸으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아주 좋은 습관이라는 것인데, 별도로 더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싶어 귀가 번쩍 뜨였던 기억이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고 나서 어느 순간엔가 그것이 역으로 강박관념처럼 작용하는 것을 느낀 것이다.
왜 나는 이 짧은 거리를 걷는 것조차 이런 식으로 하며 지내야 할까?
같은 일도 뒤집으면 묘하게 상황이 바뀌는 법이다.
일석이조는 가끔 강박이 될 수도 있다.

도산공원 정문 앞에 '느리게 걷기'라는 이름의 카페가 떠오른다.
지금은 폴로 플래그십 스토어로 바뀐 자리인데 그 카페는 근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다.
또한, 느림과 게으름이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 조금 전 어쩌면 그런 흐름이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때에 나왔던 책도 그런 제목으로 있었던 것 같다. 내 책꽂이 구석 어딘가에 꽂혀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여행기 속 모든 걸 떨치고 훌쩍 떠나 낮선 이국의 거리를 한가로이 거닐며 사색에 빠지는 낭만을 좇아 서점의 여행기 코너를 맴도는 수많은 사람들도 떠오른다.

호젓한 거리를 느릿느릿 걷는 것은 내겐 그런 이미지이다.
느림의 철학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러한 조류를 보며 막연하게만 느꼈다.
좋은 말인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특별한 때가 아니면 바쁘게 걸으며 살수 밖에 없는걸...
이것은 물론 빨리빨리에 대한 피로감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
더 빨리를 외치며 어딘가로 달려가지만 결국 쳇바퀴를 도는 우리 삶에 대한 반감 정도 였다.
좋지 하지만 내가 이것을 어떻게 내것으로 만들어 볼지는 글쎄. 일요일 아침에나 어울리는 말이지.
라는 생각 정도였다.

느림이 주는 여유와 풍요로움은 과연 그렇게 특별한 곳, 특별한 순간에만 있는 것일까?

느리게 걷는 것, 느리게 사는 것.
스스로를 돌아보건데 무슨 생각에 골똘히 빠져있을 때나 무슨 충격적인 내용을 접해 깊히 몰입하거나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평상시 스스로 느리게 걸어 본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자발적으로 걸음을 늦춰보는 것.
이것은 우리의 선택권임에도 우리가 쥐어보지 못한 티켓같은 것은 아닐까?

사실 아무데고 아무 때나 걸음 속도를 늦춰보면 된다.
겪어보면 생각보다 많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훨씬 많이 보이고 훨씬 편해진다.
풍요로움까지는 아니더라도 훨씬 여유롭고 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좋은 것은 짧게 지나가버리는 속성이 있다.
느리게 걷는 것은 그나마 그 속성도 늦춰주는 여운같은 것이 덤으로 있는 것같아 더욱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같다. 물론 언제나 느리게 다닐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당연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걸음을 늦춰볼 수 있다는 것.
언제고 나를 느림의 세계로 안내해서 한 호흡 늦춰 여유를 주는 처방을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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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용서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10/1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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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가을 여러가지 문제로 마음이 어지러웠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가장 힘들게 느껴진 부분은 사람과의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였었는데, 그 때 달라이라마에 대한 스테디 셀러 책 중의 하나인 '용서'를 샀다.

진정한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용서를 하는 본질을 알아야 하는 것인데.
책을 읽으며 그 본질에 접근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당시에는 책을 읽을 마음의 상태가 되지 못해 읽지는 않았었다.
이 후 어느 날 불현듯 다시 집어 들고 읽게 되었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지은 '오래된 미래'와 같은 이름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달라이라마.
티벳의 전통 속에 어린 시절 다소 모호한 이유에 의해 선출되는 인상을 받고 있어 그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무관한 위치에 올라간 사람이라는 인상이 있어 나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그가 위대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기도 했다. 하긴 세습되는 왕의 위치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지도자로서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지 않은가? 그저 중국의 탄압 속에 상대적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아닐까?하는 시각으로 무수한 매스컴의 내용들을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의 고뇌와 사상을 얼핏 느낄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처음 그냥 읽었을 때 그저 전형적인 격언같이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앞설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용서라는 개념의 차원을 분명하게 넓히고 깨닫게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용서'라는 말을 떠올리면 무조건 상대방만을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은 용서에있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그 미움, 원망 이라는 내 안의 실체를 놓아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용서는 결국 상대와 나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용서는 상대에 대한 내 안의 문제이다. 철저히 내 안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용서야말로 자신에게도 최상의 길이라는 것으로 귀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것이 마음을 차분히 정리해 볼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의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외에 틱낫한 스님의 말도 인용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당신은 이 종이 한 장 속에 구름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나무가 없으면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다."
나는 종이에서 구름을 볼 수 있는 사람인지 자문해보았다. 그런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가?
경계를 허물고 세상을 상호의존적 시각에서 바라 볼 줄 아는 것.
우리 모두는 어차피 모두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피아의 경계선이 약화되고 세상에 대한 자비심이 생겨 나는 것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국 사람에 대한 언급이 두차례 나오는데 작가 '빅터 챈'은 왠지 한국에 대해 냉소적 느낌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본의 얘기는 없어도 한국의 무용수나 도올 김용옥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싶어 반갑기는 했는데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 글쎄, 왜 그런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김용옥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는 달라이라마를 만나 대담을 나누고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이 '용서'의 내용 중에 그 대화를 위해 달라이라마를 찾았던 상황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김용옥은 영적인 대화를 위해 찾아온 것 같지가 않다. 교리와 지식을 늘리고 논하기 위해 만난 것 같다.
김용옥은 스스로가 너무나 똑똑해서 못견디는 사람이 아니던가...

베이징 올림픽 무렵 티벳 문제에 대해 다소 온화한 척 했던
중국이 올림픽이 끝나기 무섭게 강성으로 돌아섰고 비폭력 평화적 해결을 주창하는 달라이라마가 두손두발 다 들다시피하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근래의 소식을 접하고 있다.
중국의 무조건적인 팽창정책과 탄압 속에
달라이라마는 어디까지 용서하며 받아 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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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책은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10/1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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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책은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멋진 말이다.
내 독서의 지평을 한단계 더 나아가게 해주는 말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에서 본 글이다.

하필 이 부분을 읽다가 서점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을 사들고
그 첫 섹션 '잎'이라는 부분을 읽게 된 것이 참으로 절묘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잎'은 온통 한 문장으로 된 이야기들로 불연속적으로 나열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했으면 난 이 부분을 뛰어넘지 못하고 '만년'을
무슨 초현실적인 해체주의자의 책인양 치부하고 던져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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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띠지"에대한 짧은 감상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10/05 22:42
근래에 나오는 책들중 아주 많은 경우 허리에 띠지를 두르고 있다.
책을 읽는 중에 자꾸 손에 거슬려 아예 옆에 빼 놓고 읽는 경우도 많은데,
이 띠지는 책을 선택하는 고객의 관심을 끌 목적으로 붙어 있다보니 자극적인 카피가 쓰여있는 편이다.
그렇다보니 본질적으로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원색적인 표현에 책 디자인의 일부로 보기는 어려운 경우도 많다.
물론 어떤 경우는 제법 중요한 정보를 따로 제공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도 말했듯이 띠지의 문구로 인해 책을 구매하게 되는 일도 많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 띠지의 내용이 기억나는 책 두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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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의 띠지를 보면,
'한 권이 당신의 두 손의 때로 까맣게 빛날 때까지 거듭거듭 애독될 것을 생각하면 아아, 나는 행복하다.'
라는 저자의 다소 오만한 듯한 글이 나와있다.
오만하기 그지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홍보 문구로써는 이만한 표현이 있을까?

나는 이 띠지의 글이 눈에 띄어 사고 말았다.
참으로 괴이할 정도의 자기몰입인데 작가라면 이 정도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야 워낙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으로 소문난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나 자신을 보면 이 띠지가 도서 판매의 증대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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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맥카시'의 소설 '로드'
'감히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
정말 감히라는 말이 앞에 나올 법한 표현이다. 종교계 입장에서 보면 황당할 말이겠다싶다.
요즘 이 정도의 도발적인 띠지 글이 아니면 안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내 사견이지만 '로드'는 그 정도의 도발적 홍보 문구를 쓰지 않아도 될만큼 충분히 훌륭한 소설이다.
그래서 이러한 띠지의 오버가 좀 아쉽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 이토록 절박한 홍보 문구를 써야할 정도로 자체의 상품성이 없는 소설인가 싶어 사고 싶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후 이 책의 진가를 알게 되어 사기는 했지만
이 띠지의 첫 인상이 그랬다면 그건 분명 역효과 아닐까?










책의 띠지는
말초신경 자극과 역효과라는 줄다리기의 접점을 잘 잡아야 하는데다,
책이 지향하고자 하는 디자인의 틀을 해치지 말아야 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숙제일 거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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