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일본열광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7/10/1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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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이런저런 일로 일본에 다니면서 강하게 의구심이 든 것 중의 하나가 너무나도 미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일본의 모습이었다. 일본의 웬만한 괜찮은 음식점에 가면 일본 전통의 화식 요리집이건 소위 요즘의 트렌디한 퓨전 요리집이건 거의 예외없이 아주 미국적인 재즈나 스윙 같은 팝 음악이 흘러나온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일식집에 가면 엔카 같은 일본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일본은 왜 그럴까? 나는 일본열광을 읽으면서 일본이 만들어낸 서양보다 더 서양적인 문화, 옥시덴탈리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푸치니가 나비부인을 통해 동양에 실제하지 않는 서양에서 만든 허상의 동양이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했다면 반대로 일본이 만들어낸 서양이 그 옥시덴탈리즘이었던 것이다. 정말 공부가 많이 되면서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매력적인 책이었다. 저자인 정운교수는 기본적으로 마케팅의 감각과 세일즈가 뛰어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표지의 저자 소개에 강의 섭외가 가장 힘든 분이라고 나와 있다. 그럴만 하다. 세스고딘의 보랏빛 소를 읽으며 리마커블한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처음 이 책을 서점에서 집어 들었을 때 당장 들고 가서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에 열거된 주제들이 너무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왜 일본 만화의 여주인공은 짧은 치마 사이로 하얀 팬티가 살짝 보일까? 왜 길거리에서 할머니가 넘어져도 "대장부입니까?"하고 물어볼까? 등등

일본에 대한 책을 한 두 권 안 읽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오래 전 국화와 칼을 읽었고 재작년에인가 사업상 일본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인문한 코너에서 짧은 문고판으로 일본인들의 사상에 대한 책도 사서 읽기도 했다. 수년 전 와세다 대학교에 잠시 연수를 다니러 갈 때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의 일본편 만화를 사서 들고 가기도 했었다. 일본인들은 너무도 가까와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다가도 모를 요소를 가지고 있는 건 비단 나만 느끼는 바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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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광은 얼핏 제목을 봐서는 일본에 대해 단지 찬양을 하는 듯한 느낌이 온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전여옥식의 일본은 있다. 없다. 와 같은 단편적이고 흑백론 적인 접근이 아니다. 깊은 통찰과 해학으로 한 꺼풀씩 일본을 벗겨가는 묘미가 돋보이는 책이다. 기대했던 대로 나는 단숨에 이 책을 읽어 내려갈 수가 있었다.

일본 특유의 관음증적인 흰 팬티에 대해 빤쓰라는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쓰는 이유도 그 하얀 빤스는 일본의 것으로 국한 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팬티도 아니고 팬츠도 아닌 일본인의 빤스이기 때문이다. 일본 남자들의 억압된 심리는 그 빤스를 넘어설 수가 없는 것이라는 말이 참 설득력있게 들렸다. 또한 러브호텔을 이용하는 사회적 환경, 일본 전국을 열차로 연결하기를 주창한 근대화의 아버지의 벽을 뛰어 넘지 못하는 소심한 현대 남성들이 기차를 타고 불륜을 저지르는 현실의 해석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고립적인 개개인이지만 세계 누구보다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심리와 사회상에 대한 해석도 많이 와 닿았다. 그래서 그들은 남녀 혼탕에 들어가서도 개방적인 것이 아니고 옷을 벗었으되 벗지 않은 걸로 하자는 심리가 있다고 한다. 어쩐지 일본의 목욕탕에 가면 우리나라와 달리 어정쩡한 자세로 수건을 들고 가리고 다닌다. 남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건 결국 1인씩 칸막이가 쳐진 라멘집이 인기를 끌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극단적인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추성훈과 양방언의 우리 교포 후손의 이야기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난 사실 양방언의 얘기를 수 차례 들어봤지만 재일교포인 것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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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학위를 하고 일본에 교환 교수로 머물면서 쓴 글이라 일본, 한국, 독일 삼국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례와 분석이 더해진다. 꽤 오래 전 '사랑한다고 말해줘'라는 일본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 나는 그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토요카와 에츠시의 최근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어 흥미로왔다. 그의 중년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언급하며 우리네 386세대의 잃어버린 낭만을 아쉬워하는 부분에서는 많은 공감이 갔다. 또한 독일 통일시기 역사의 현장에서 저자 본인의 아찔한 경험을 덧붙여가며 박진감 넘치는 얘기, 중년 남성이 도쿄의 하늘 아래 홀로 지내며 자칭 론리 울프라 칭한 모습은 그야말로 눈에 선하다.

 

심리학을 전공한 이들 같으면 쉽게 와닿는 얘기들이 많았을 것 같다. 그러나 프로이트적인 해석과 연결이 다소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부분이 있어 각각의 연결 고리를 스스로 찾아 납득을 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특히, 몇 몇 사례는 책을 다시 읽어가며 연결해보려 했지만 끝내 이해하는 데 실패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일본을 편견 없이 받아 들이고 나름대로의 주관적이긴 하지만 역사적 사회적 고찰과 심리의 해석은 너무도 명쾌하고 재미있었다.

삿포로, 교토의 기차역, 닛코의 유황 냄새 진한 온천 등을 포함해 이 책에 나온 인상적인 여행지 몇 군데도 꼭 가보고 싶다. 파나소닉에서 제조한 라이카 브랜드 디카 딸깍이 하나 둘러 메고 5세대 아이팟을 귀에 꽂고 일본어를 공부하며 생소한 땅 도쿄의 시내를 탐구하며 어슬렁 거리는 저자의 모습...나도 일본어가 공부하고 싶어졌고, 나의 카메라와 다리 품 팔아서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이건 부러움 때문일 것이다.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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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프트쥔장 2007/10/19 19:57 Modify/Delete Reply

    앗 이 책을 읽으시는 분이 또 계셨군요, 이올린에서 보고 넘어왔습니다...저도 강추!

    • dhdean 2007/10/20 14:00 Modify/Delete

      재미있으면서 얻는게 많은 책이지요. 그래서 강추입니다.

  2. song3598 2008/03/28 19:30 Modify/Delete Reply

    좋은 서평이네요.
    블로그에 퍼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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