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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7/11 혼자서 등산하기(1) (2)

캐나다의 자연은 자연스럽게 간다

일상의 발견 2007/10/06 20:48

지난 달 캐나다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늦여름 밴쿠버 주변 록키 산맥 자락을 둘러보며 바다와도 같은 캐나다의 드넓은 숲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빽빽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른 침엽수들로 들어찬 드넓은 숲의 모습이 흔히 캐나다의 자연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이듯이 정말 그러했다. 광활한 대자연의 캐나다는 과연 그런 면에서는 축복받은 땅이었다.

들은 얘기지만 공터에 여기저기 핀 민들레, 푸른 잔디 운동장에 허옇게 피어나 보기 흉한 느낌이 드는 민들레도 함부로 솎아내면 안 된다고 한다. 자연적으로 자라난 것들은 절대 손을 대서는 안되는 철저한 환경 철학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철학인지 몰라도 이번 여행에서 본 특별한 풍경은 내게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내가 본 캐나다의 침엽수림의 특징은 워낙 넓은 땅이기도 하지만 기후대가 온대에서 냉대에 걸쳐 있어서 그런지 침엽수림 중심의 단조로운 수종의 숲이 많다는 것이다. 소나무 한 가지만 꽉 들어찬 숲이 차로 얼마간 계속 달려도 끝 없이 이어지는 곳이 그 곳이다. 세상의 많은 것이 그렇듯이 단일한 종류로만 이루어진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소나무를 고사시켜 골치를 썩고 있는 재선충이라는 벌레가 창궐하고 있다. 그런데, 캐나다의 소나무 숲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애국가의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말하듯 대표적 향토 수종인 소나무가 위기에 처한 것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 같다. 감염 지역에서는 물론이고 전국적인 목재의 이동 경로에 통제를 가하며 제선충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전쟁 후 황폐했던 산들이 이 정도까지 푸르게 된 것에는 인위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 했던 일이니까.. 가뜩이나 좁은 땅 덩어리에 위기가 한 번 닥치면 손을 도리도 없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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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캐나다는 달랐다. 밴쿠버 북부의 어느 지역을 지나며 단조로운 숲의 풍경에 잠시 졸다 눈을 떴을 때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풍요로운 숲은 온 데 간 데 없고 무슨 산불이 지나 간 듯이 시커멓게 죽어 황폐해진 숲이 눈에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 곳이 내가 알던 숲의 나라 캐나다의 모습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차를 타고 마을을 하나 지나며 몇 킬로미터를 가도 온통 눈에 보이는 것은 산 전체가 어느 하나의 예외도 없이 까맣게 말라죽은 나무의 공동묘지였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히도 초토화되었단 말인가? 그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마치 인공적으로 만든 영화 속의 세트장 같은 분위기라 도무지 현실의 모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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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 사람에게 얘기를 들으니 재선충으로 말라 죽은 소나무의 숲이라는 것이다.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되어 죽게되면 그 벌레의 유충들이 나무가 물을 빨아 올리는 수관을 차단하여 말라 죽게 만든다고 한다. 소나무는 결국 노랗게 잎이 마르다가 갈색으로 바뀌고 마지막 삼단계로 까맣게 죽는다고 했다. 까맣게 죽은 나무는 결국 맨 마지막 단계의 모습이었다. 흡사 산불에 타죽은 모양과 같았다. 나무 속은 썩어가며 죽기 때문에 이렇게 죽은 나무는 경제적 가치도 전혀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소나무에게는 흑사병이나 에이즈같은 재앙인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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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죽기 시작하고 있는 재선충병 초기감염 소나무>

그렇다면 왜 이토록 죽어가는 숲이 광대하게 방치되고 있는 것일까? 왜 적극적인 방재 대책을 해서 영역을 좁히거나 치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일까? 물론 나는 차를 타고 단지 지나갔기 때문에 아주 제한된 모습 밖에는 보지 못했다. 어디선가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삼림에 있어 대표적 선진국인 캐나다의 모습치고는 피해 입은 숲의 면적이나 규모가 너무도 방대했다. 달리고 달려도 까맣게 타버린 성냥개비들을 세워 놓은 것같은 그 풍경이 계속되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후에 들은 바이지만, 캐나다는 그걸 자연의 모습으로 본다고 했다. 결국 자연에서 벌레가 생겨 소나무를 죽게한 것이면 그것 역시 자연의 모습으로 보아야하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손 놓고 있는지 그 이상 내가 알아본 것은 아니지만 자연이 벌이고 있는 일에 사람이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는 철저한 그들의 철학이 느껴졌다.

소나무가 너무 지나치게 획일하게 숲을 만들고 있거나 기후가 변해 소나무의 생존 경쟁력이 떨어져서 생긴 일이라면 소나무는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것을 억지로 살리려고 하는 것도 자연에 반하는 일일 수 있다. 결국 그 곳이 소나무가 살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게 되거나 소나무가 지나치가 많아 소나무 스스로가 경쟁력이 없어져 버린 상황이 되었다면 그 곳은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가야 한다면 나무가 다 말라 죽고 없어져 버린 그 민둥산은 마른 풀잎만 굴러다니는 사막으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소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거나 아니면 재선충을 이겨낸 소나무가 나온다면 그것들이 다시 자라날 것이다. 그러면 그 숲은 지금의 바뀐 환경, 즉 재선충이 창궐해도 끄덕하지 않는 숲이 다시 덮히기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세에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이 무수히 많은 이들을 죽게 만들고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듯이 했지만 인간은 스스로 그것을 이겨 냈듯이 말이다. 물론 소나무가 자연에 대해 저항력을 키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인위적인 재앙을 그냥 두어서는 안될 것이고 이로인해 인류가 소나무에게 재앙을 만들어 방치하고 멸종에 이르게 하는 것은 당연 있어서는 안될 일이겠지만...

거의 무한하다 싶을 정도의 드넓은 숲을 가진 캐나다와 우리나라가 같은 대처법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작은 곳에 페스트가 창궐하면 격리하고 치료하는 현명함을 발휘하지 못하면 몰살되고 말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연에 맞기기에 너무 작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을 보호라는 명목하에 지나치게 인간의 손으로 관리하려는 오만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최근 뉴스에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자연을 인간의 시각에서만 보고 관리하려는 폐해에 대한 얘기가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자연은 자연이 이끌고 가게 두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층 더 큰 지혜같은 걸 느꼈다.
하지만, 무수히 죽어가는 나무를 보며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고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햇빛이 무심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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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등산하기(1)

일상의 발견 2007/07/11 18:05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홀로 등산을 하는 건 2002년인가 소백산을 다녀온 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단지 산행을, 아는 사람 없이 했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별로 없는 산을 홀로 고즈넉하게 다녀온다는 거 아주 새삼스러운 독특한 경험이다. 양평의 용문산에서 뻗어 나온 산자락으로 우리 집의 뒷산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능선을 택해서 다녀왔다. 약 한 달 전쯤 어머니를 따라서 익혀둔 산길을 홀로 가 본 것이다. 혼자 산을 가면 여러모로 다른 상황이 된다.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 스스로의 페이스를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무슨 구도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장거리 달리기와 비슷해서 오버페이스를 하면 시간이 갈 수록 힘이 빠지게 된다. 아무래도 혼자 가게 되면 오버 페이스를 하기 마련이다. 누가 쉬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발걸음도 빨라지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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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뒷산의 등산코스는 산 초입에 난 임도를 따라 시작된다. 자동차 두 대는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약 1km 정도 완만한 경사 길로 뻗어 있는 길이다. 굳이 등산이 아니더라도 가볍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이 길가에는 산딸기가 유난히 많다. 난 산딸기가 이토록 흐드러지게 많이 달려 있는 숲을 본 적이 없다. 워낙 깊숙하게 들어온 오지의 길이라 그런 것 같다. 북한산 어딘가라면 진작에 누군가 다 따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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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길이 끝나면 산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하는 등산로로 들어서게 되고 여기서부터 능선을 타면서 산봉우리를 몇 개 거쳐 우리집 앞인 소주골 계곡으로 내려올 수 있게 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능선을 타기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첫번째 봉우리인 헬기장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단번에 경사를 올라가며 오버페이스를 한 것 같았다. 너무 의욕에 넘쳤나 싶게 시작부터 빨리 가느라 무리를 한 것이다. 봉우리 정상에 일단 주저 앉아 물을 마시고 숨을 여러 번 골랐지만 다리에 벌써 힘이 빠진 걸 느낀다. 한동안 너무 운동을 안 했다. 운동부족을 절실히 느끼면서 반성해본다. 멀리 용문산 정상의 관측소가 제법 가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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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위에서 만난 마지막 산딸기가 유난히 탐스럽게 느껴졌다. 이후로 돌아오는 능선길부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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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내리막길과 오르막 경사길을 반복하며 능선을 따라가는데 오버페이스한 후유증으로 한동안 다리에 기운이 계속 없었다. 날씨가 더운 날이라 태양의 기운이 다소 쳐진 늦은 오후에 출발했건만 땀이 비온 듯 흐르며 목이 타는 듯했다. 어머니 따라 산길을 가며 이런저런 풀과 나무에대한 설명을 듣느라 고개는 땅을 향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갔던 길인데, 내눈에는 다 똑 같이 생긴 풀과 나무라 기억을 되살려보려 해도 안된다. 산초나무나 산동백같은 게 어렴풋이 생각나기도 하고 둥굴레 풀이 보이기도 했는데 이것저것 비슷해서 헷갈리기만 한다. 능선 중간 해가 잘 안드는 곳인지 두터운 이끼가 덮여 양탄자같이 포근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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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에 나온 철갑을 두른 것 같은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요즘 소나무가 솔잎혹파리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수난을 당하고 있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곳 산의 소나무는 한눈에 봐도 튼실한게 건강해 보였다.

우리나라 여느 중부지방의 식생과 다름없이 흔한 참나무도 아주 많은 산이었는데 코르크를 만드는 두터운 껍질의 참나무가 많았다. 오른쪽의 사진은 보통 많이 보는 참나무이다. 왼쪽의 두터운 껍질의 참나무와 비교해보면 같은 참나무임에도 전혀 다른 모양임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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