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회'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2/16 <서평>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서평>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책꽂이 들여다보기 2009/02/16 18:3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상하리만큼 푸근하던 날씨가 언제 다시 추워질까 했더니 다시 꽁꽁 얼어붙은 바람이 마구 분다. 겨울이 겨울답게 안 추워서 왠지 모르게 초조하기까지 하던 참이었는데

하지만, 아무리 갑작스런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지금 이 계절이 머지않아 남은 겨울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함께 든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소설가 이신조책의 연인을 읽다가 알게 되어 읽은 소설이다. 이미 인터넷 서점에서는 오랫동안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는 책인데 추운 날씨에 읽어보면 더욱 제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북유럽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편의 추리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을 느낄 수 있는 책,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다.
페터회라는 작가의 이 작품은 줄거리로만 보면 주인공 스밀라가 친하게 지내던 이누이트족 소년의 죽음을 보고 그 배후를 파헤쳐가는 내용인데 이 줄거리 자체만으로는 이 소설의 매력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문장의 표현 하나하나가 정말 예술이다. 글들을 그냥 넘기기 아까워 메모라도 하면서 읽어야겠다 싶을 정도다. 그러한 문학적 표현 들이 넘쳐나는 보석 같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뭐랄까 하드코어 액션물의 영역을 넘나들기도 하고 하여간 유럽의 잘 짜진 미니 시리즈를 하나 보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남자 작가가 여성의 입장으로 기술해 나가고 있는 부분, 다분히 수학적이고 공업적, 과학적 접근이 많은 점도 인상적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강한 인상을 받은 부분은 따로 있다.
주인공 스밀라는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 어머니에게서 자라며 극지방과 그 속에서의 지식, 삶의 지혜가 축적된 아주 매력적인 여자다. 이 글에는 이누이트가 본 비 이누이트인 즉, 평범한 북유럽 사람들의 눈과 추위에대한 어설프고 엉성한 모습에 대한 묘사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스밀라는 통제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규칙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근본적인 반감이다. 내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익숙하고 어쩌면 평안함까지 느끼는 것들 신분증, 안전검사, 신고, 등록..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것을 스밀라는 거부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다.

굳이 국민윤리나 도덕이라는 과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사회에서 나아서 자라면서 그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맞춰져 자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나도 확실하게 길들여진 탓에 사회가 요구하는 규칙에서 스스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며 사회인의 모습이 이미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있지 않은가?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이 사회가 만들어낸 소위 바람직한 인성이 체화된 불쌍한 소시민적 자아를 끌어 안고 살고 있는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나 자신은 어떤 규칙, 사회에 잘 부합하는 규율을 내면화하고 거기에 복종함으로써 안도감을 느끼고 살아가는데 익숙해 있다는 것 말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당연한 듯한 것들에 대한 스밀라에겐 근원적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이 소설 속의 너무도 멋진 문장 몇 개를 옮겨 본다.

 

나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언제나 등을 돌리고 있는 동안 눈이 내리기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인생은 우리가 한 번도 해결하지 못했던, 쓰디쓰고 본의 아니게 우스꽝스러우며 반복적인 갈등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면, 기다리면서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다림은 파괴적으로 변한다.”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최악의 것은 분노가 아니다. 최악의 것은 분노 뒤에 있는 욕망이다.”

 

자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맞는 일이 생기지 마치 우연처럼 보이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야.”

 

어떤 이는 이것저것 섞여 정체성이 모호한 책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모처럼 소설을 읽으며 빠져드는 특유의 스토리 몰입으로 북극의 언저리를 헤매는 겨울 밤을 만끽할 수 있었고 작가의 멋진 언어의 유희로부터 읽는 맛이 주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느끼는 소설의 묘미 중 하나는 읽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야말로 각자의 보물을 따로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Trackback 0 : Comment 0